[현지취재] 삶의 질을 높일 자율주행차, 볼보 360c
2018-09-13 17:07:20 입력


13년 만에 다시 찾은 스웨덴 제2의 도시
  


끝없이 펼쳐진 숲의 바다시야를 압도하는 푸른 물결에 눈이 시려왔다. 13년 만에 다시 찾은 예테보리(Göteborg)’. 철강과 조선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스웨덴 제2의 도시다영어권에선 고센버그(Gothenberg)’, 독어권에선 고텐부르크(Gothenburg)’라고 부른다본고장 발음은 요떼보리에 가깝다과거 이 지역에 살던 요떼 족에 뿌리를 둔 지명이다

예테보리와 첫 인연은 2005년 사브 9-3 스포츠콤비 시승회였다여러모로 생애 첫 경험이었다스웨덴어도밤 11시에 진 해가 새벽 1시에 다시 뜨는 백야(白夜)’도 마냥 낯설었다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갈라지고 터진 국도를 달리며 스웨덴 차 서스펜션이 부드러운 이유를 깨달았다또한, ‘복지강국’ 스웨덴이 20세기 초까지 가난했단 사실을 알고 놀랐다.



지난 13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자동차 브랜드사브(SAAB)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GM의 방관 속에 홀로 끙끙 앓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이제 스웨덴 도로에서조차 찾기 어렵다예테보리 도심엔 몇 안 되지만 고층 빌딩도 우뚝 솟았다중국 지리자동차는 2010년 볼보자동차를 사들였고, 2017년엔 볼보트럭 지분마저 8.2% 인수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변하지 않은 게 더 많다건물과 거리는 여전히 유럽 다른 도시보다 수수하다. 9월이지만 해는 아직도 오랫동안 떠 있다무엇보다예테보리에서 볼보의 존재감과 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막강하다점유율이 압도적이다택시와 경찰차 가운덴 여전히 XC70이 많다차이가 있다면그 사이 볼보가 내놓은 SUV가 거리에 부쩍 늘어난 정도다.

스웨덴인들은 영어 잘 하기로 유명하다동시에 스웨덴어 사랑도 넘쳐난다가령 마트에 진열한 상품에서 영어 표기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 때문에 해프닝도 수없이 겪었다호텔 조식뷔페에서 신중하게 골라 담은 시리얼에 우유 대신 요거트를 쏟아 붓는 식이다볼보와 이케아에릭슨일렉트로룩스노벨상의 나라스웨덴을 오랜만에 다시 겪고 왔다
  
스웨덴 요약할 키워드, ‘적당히와 안정



개인적으로 스웨덴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 2015년 미니 클럽맨 시승회 때문에 스톡홀름을 찾은 적 있다수도여서 그런지 예테보리보다 한층 화려하고 아기자기했다그러나 그때 역시 까막눈의 겉핥기 방문이었다그래서 이번엔 출국 전 스웨덴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었다. ‘휘슬러란 출판사에서 번역해 펴 낸 <글로벌 컬처 가이드스웨덴 편이었다

책 내용 가운데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이 책에 따르면스웨덴 사람들은 조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인내심이 강하고 정직하다또한수줍음을 많이 타서 말수가 적다믿거나 말거나지만, ‘모든 대화는 7분이면 끝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 단어로 의사를 전할 수 있다면굳이 두 단어까진 쓰지 않겠다는 주의다



복권과 관련한 농담도 재미있다노르웨이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면 콧노래 부르며 신나게 스키를 탄다덴마크에선 식당 잡아 떠들썩한 축하 파티를 벌인다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 주변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다스웨덴 사람들 반응은 영 딴판이다남편이 나 복권에 당첨된 거 같아라고 차분히 말하면아내가 가만히 웃으며 답한다. “잘 된 일이네요.”

스웨덴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러곰(Lagom)’과 트뤼겟(Trygghet)’이 있다러곰은 적당히란 뜻과거 바이킹은 큰 사발로 술을 돌려 마셨는데너무 적게 마시면 아쉽고 많이 마시면 다른 사람이 못 마시니 늘 적당함을 유지한데서 비롯된 사고방식이다소득세 누진제로 비슷한 수입의 중산층이 대부분인 스웨덴을 설명할 키워드 중 하나다

트뤼겟은 안정’ 또는 안전을 뜻한다그래서 스웨덴인들은 결정에 앞서 모든 가능성과 장단점을 따진다세계 최강의 복지도 이 정서에 뿌리를 뒀다. ‘가난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 몫 했다사회 순종적 태도 때문에 스웨덴은 일본과 종종 비교된다그러나 서비스 마인드는 반대다손님을 왕처럼 떠받드는 모습을 비굴하다고 생각한다
  
주요 시설 아우른 볼보 산실토슬란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신차 시승이 아니었다볼보자동차의 새로운 자율주행차 컨셉트 발표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단숨에 날아 왔다행사장은 토슬란다의 볼보자동차 본사 디자인센터예테보리 도심에서 차로 30~40분 거리로본사와 공장테스트 트랙세이프티센터 등을 아우른 볼보자동차의 고향이다볼보트럭 역시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볼보자동차는 스웨덴인들이 꿈꾸는 로망을 이룰 필수요소내용은 다음과 같다. ‘테라스와 정원 갖춘 넓은 집에서 살며 볼보자동차를 몰고자녀 둘과 애완견까지 있으면 남부럽지 않죠.’ 볼보자동차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자긍심 또한 인상적이었다이날 이동을 책임진 운전기사는 한국에서 XC60은 10달을 기다릴 만큼 인기라고 하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한편토슬란다 볼보 단지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규모를 뽐냈다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띄엄띄엄 섰고여백을 이룬 주차장엔 흰 필름 씌운 채 출고 또는 수출을 기다리는 차가 즐비했다이따금씩 위장막을 쓰고 돌아다니는 신차도 볼 수 있었다예테보리 시내에선 주행시험 중인 지리자동차 산하 브랜드 링크앤코의 신차도 봤다



진입로 오른쪽에 우윳빛 건물이 눈에 띄었다2의 AMG를 꿈꾸는 튜너 출신 고성능 부문 자회사폴스타의 본사다전 볼보자동차 디자인 총괄토마스 잉엔라트가 수장을 맡고 있다. ‘그의 연봉은 얼마고 세금은 얼마나 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목적지에 도착했다난 눈을 의심했다분명 간판은 디자인센터인데건물에 아무런 특색이 없어서다

장식 하나 없이 네모난 건물이 딱 전화국 분위기튀지 않는 분위기를 선호하는 스웨덴의 정서가 피부에 와 닿았다복도의 진열장이 눈길을 끌었다세 켤레의 다른 구두를 전시했는데왼쪽부터 차례로 90과 60, 40이라고 써 놓았다. “붕어빵처럼 서로 빼닮되 크기만 --로 다른 차를 디자인하지 않겠다는 토마스 잉엔라트의 다짐을 담은 전시물이다
  
단거리 항공여행 대신할 자율주행 자동차
  



행사장 바닥 곳곳엔 원형으로 홈을 파 놓았다신차 디자인 품평회를 위한 턴테이블이다넓은 공간 중앙엔 둥그런 무대를 마련하고 가림막을 쳐 놓았다이 베일에 예고편 영상을 틀었다볼보자동차 부분별 임원이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하는데내용이 아주 흥미로웠다자율주행차로 단거리 항공여행 대체할 명분을 꾸준히 설명했다아주 신선한 접근이었다

실내가 서서히 어두워졌다이윽고 베일을 좌우로 펼쳤고사진으로 먼저 봤던 360c가 시야에 들어왔다베일 한쪽 옆에서 중년 신사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괄목할 만한 성과 덕분에 최근 계약을 2022년까지 연장한 볼보자동차 CEO, 하칸 사무엘슨이었다그는 향후 수년 내 사업에 변화가 있을 예정인데볼보자동차가 업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흔히 미래의 자율주행차라면 개인적 공간으로서 의미가 희석된 이동수단을 연상하는데볼보의 생각은 다릅니다개개인의 수요에 맞춘 아주 사적인 공간을 제공할 수 있고여기에 큰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습니다바로 단거리 항공여행 대체 수단이지요.” 유행이나 대세와 상관없이 나만의 창의적 해법을 꿈꾸는볼보다운 아이디어다

그의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예테보리까지 왔던 여정을 떠올렸다독일 뮌헨에서 경유를 위해 대기하고까다로운 보안검색을 거쳐 항공기에 오른 뒤 다시 한참 수하물을 기다리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비행시간은 한 시간 반그러나 전후 소요한 시간을 합치면 3~4시간에 달했다국내 도시를 넘나드는 비행도 실제 걸리는 시간엔 별반 차이가 없다




CEO의 발표 이후 공식 행사가 막을 올렸다각 세션별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360c를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우리 그룹의 첫 세션은 마틴 레벤스탐과의 대화볼보의 기업전략 총괄 수석 부사장이다그는 자율주행차 여행이 더 편안하다면 굳이 국내선 항공기를 탈 이유가 없다우린 세계적 항공기 제조사나 항공사와 경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면 취하며 야간이동 하는 프리미엄 여행
  


마틴 레벤스탐 수석부사장은 구체적 예를 들었다. “예테보리에서 스톡홀름까지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면 55분 정도 걸립니다그런데 공항까지 이동과 보안검색대기최종 목적지까지 이동을 감안하면 실제 4시간 이상 필요하죠직접 운전해서 스톡홀름에 도착할 수도 있는 시간이에요그런데 푹 쉬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 대안으로 떠올릴 만하지 않을까요?”

그는 볼보 360c를 집 앞으로 불러 탄 뒤 편안한 수면을 취하며 이동해 다음날 아침 개운한 상태로 목적지 코앞에 내리는 프리미엄 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경제적 측면도 강조했다. “정원 140명인 보잉 737 가격은 1,400억 원으로좌석 당 10억 원 꼴이에요게다가 항공기는 거리와 상관없이 이륙 때 가장 많은 연료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뿜죠.” 




과연 인간이 더 이상 운전하지 않아도 될 때 생길 자유와 시간을 자동차 설계에 반영한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볼보의 360c 개발은 이 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기술만 뾰족이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죠반면 볼보는 삶의 질을 높일 아이디어 찾는데 중점을 뒀어요.” 이날 만난 볼보자동차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 로빈 페이지의 말이다.

이날 볼보자동차는 형태는 온전하되 파워트레인은 갖추지 않은 모형과 실내 구성을 보여주기 위한 두 가지 다른 부분 모델까지 총 석 대의 360c를 공개했다. 360c는 수면공간과 이동식 사무실거실엔터테인먼트 공간 등 4가지 다른 실내 가운데 고를 수 있다테마에 따라 정원은 1~4명이다취재진의 관심을 독차지한 테마는 예상대로 수면공간이었다.






로빈 페이지 수석 부사장이 리모컨을 작동하자 등받이가 뒤로 물러나고 시트가 펴지면서 침대로 변신했다침대 옆엔 서랍식 수납함을 마련했다첫 번째 칸엔 식음료두 번째 칸엔 옷을 보관할 수 있다운전석과 엔진 없는 자율주행차다 보니공간이 사방팔방 여유만만이다게다가 천정이 유리여서 답답함도 적다아늑하고 편안한 나만의 일등석인 셈이다
  
이용료 내고 빌려서 300㎞ 안팎 여정 소화
  



하칸 사무엘슨 CEO는 360c의 운영방식을 넌지시 암시했다. “개인의 직접 구매보다 이용료 내고 쓰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레벤스탐 수석 부사장의 생각도 비슷했다. “볼보가 모빌리티 서비스에 직접 나설 계획은 아직 없어요그보다는 300㎞ 안팎의 국내선 항공여행 대신할 360c를 루프트한자나 우버웨이모에 납품하는 쪽이 훨씬 현실성 있죠.”

볼보자동차는 360c를 통해 사회의 근본적 변화도 꿈꾼다레벤스탐 수석부사장은 운전의 수고 없이 나만의 공간에서 쉬며 이동할 수 있다면비싼 비용 감수하며 도시 근처에 살 필요가 없다그러면 도심 공간도 한층 여유로워지고주택가격을 안정화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나아가 노약자나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자유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듭 강조했다자율주행 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가능성은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여행과 도시설계인프라 사용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볼보는 현재 누구보다 자율주행 기술을 갈고 닦는데 열심이다그러나 아직 360c와 같은 형태는 아니다이번에 선보인 360c는 새 개념과 아이디어참신한 제안을 화두로 던지기 위한 수단이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안전에 타협 모르는 볼보의 고집엔 변화가 없다볼보는 자율주행차에서 취침할 때 승객을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 안전모포를 연구 중이다. 3점식 시트벨트는 앉은 자세에 맞춰 고안한 장치인 까닭이다볼보는 1959년 세계 최초로 3점식 시트벨트를 발명한 주역그러나 일부러 특허를 내지 않아 오늘날 모든 자동차가 쓰고 있다



안전모포는 몸에 덮고 잘 때 뒤척임을 포용하되 충격이 가해질 때 효과적으로 사람을 보호하고 붙든다레벤스탐 수석부사장은 말한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처음 날았을 때 오늘날의 항공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자율주행 역시 마찬가지에요우린 혁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을 기대하고 있어요.”
  
다른 도로 사용주체와 실시간으로 의사소통
  


한편볼보 360c는 최근 자동차 업계가 선보인 자율주행 콘셉트카와 여러모로 다르다우선 형태다토요타 e팔렛트나 폭스바겐 세드릭은 승합차 비슷한 외모다. ‘라이드풀링(합승공유)’을 전제로 설계한 까닭이다반면 360c는 개인 또는 소수와 이용을 염두에 뒀다유달리 수줍음 많다는 스웨덴인들의 성향을 자연스레 반영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360c의 덩치는 사진으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볼보 외장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 막시밀리언 미소니는 차체 길이는 볼보 S90과 거의 같다그런데 네 바퀴를 모퉁이 끝까지 밀어냈다엔진과 운전석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 결과 실제 수치보다 한층 더 거대해 보인다게다가 쇼카의 성격 때문인지 25인치짜리 휠과 타이어를 끼웠다



미소니 수석 부사장은 360c에 도입한 의사소통 개념을 소개했다차체를 360°로 두른 LED 조명 띠와 사운드로 정차 대기 중출발 예고가속 중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에서 통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수단은 빛과 소리로 한정했다예외적으로예약한 고객 근처에 도착했을 때 전면 디스플레이에 고유번호를 띄운다

마지막으로서로 마주보는 4개의 좌석 갖춘 360c 인테리어 모델에 타고 각기 다른 테마의 VR(가상현실체험을 했다시작은 이동 사무실중앙 테이블 또는 옆 창에 노트북을 미러링해 이동하며 업무를 이어갈 수 있었다이번엔 화면이 확 바뀌면서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했다은은한 간접조명으로 물든 실내에서샴페인을 홀짝이며 야경을 즐겼다



어느덧 360c는 가로등 하나 없이 컴컴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시트가 스르르 누웠다유리 천정엔 별이 한 가득 떴다적막하고 아늑한 침대에서흐릿한 달빛 쫓는 사이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적당하고 안전해서계속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결코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빠르면 2021볼보의 몽환적 상상은 현실로 거듭날 예정이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볼보자동차
로드테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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